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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독교 공인과 콘스탄티누스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306년부터 33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로마를 통일하기 전에는 로마제국이 넷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너무 방대해서 관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는 지금의 프랑스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자신의 적인 막센티우스를 이태리에서 몰아내고 로마를 점령하기 위해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진격했습니다. 로마의 성벽 밖에 있는 밀비오 다리 앞에서 강력한 적과 대처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콘스탄티누스가 깊이 고민하고 있을 때 꿈에 십자가가 보이면서 “이 깃발로 정복하라”는 음성을 듣고 십자가의 깃발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막센티우스의 많은 군인들은 밀비오 다리에서 티베르 강으로 떨어져 죽고 콘스탄티누스는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그의 승리를 기독교의 하나님의 도움으로 믿었습니다.

 

밀비오다리

 

밀비오다리전투

 

이후, 그는 313년에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발표한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신앙과 예배를 허용하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헌법적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적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그의 개종의 정확한 성격은 여전히 역사적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종은 로마제국과 기독교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기독교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인정되지 않았고 종교적 및 법적으로 탄압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밀라노 칙령은 로마 제국의 종교적인 풍경을 변화시키고,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밀라노칙령 기념판

 

이후에도 이러한 종교적 자유와 헌법적 보호는 로마 제국의 후속으로 비잔티움 제국에서 이어졌으며, 이는 기독교가 서구 문명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 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교의 도시 로마를 떠나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기로 결심하고 소아시아의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고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즉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