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미래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여성의 리더십 발휘를 들고 있습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21세기는 “여성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도 나이스비트의 예견대로 여성의 교육기회와 의식의 변화로 전문직에서 비전문직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사회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파워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역할이 다른 어떤 분야의 역사에서 보다 종교의 역사에서 두드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가장 평가절하 되고 있는 분야가 종교계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1960년대 일어난 페미니스트운동이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여성의 지위, 여성의 감정, 섹슈얼리티, 개별적 삶 등 다방면으로 여성에 대해 재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학과 종교영역에서도 고대 및 중세사회의 여성에 대한 적지 않은 연구물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현재의 여성의 지위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연구해 보는 것은 앞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방향 제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 문화와 사상의 진원지인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에 대한 통찰을 가진다면 현재의 기독교 여성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논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작업의 하나로 본 글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여성들의 결혼에 대해 먼저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결 혼
결혼과 그에 따른 가족의 형성은 고대 이스라엘 남녀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남편을 얻을 수 없어 독신으로 남게 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겼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약 성경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의 결혼에 대해 부모의 간섭은 절대적이었고, 특히 아버지의 결정에 달려 있었습니다(출 22:17). 결혼문제에 대해 딸에게 묻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아들에게 묻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친척이 사는 메소포타미아로 자기의 종을 보냈고, 그 종은 리브가의 부모들과 이 문제를 처리했습니다(창 24: 33-53). 삼손의 경우도 신부를 선택하는 데 대하여 부모에게 동의를 구했으며 부모들은 아들이 블레셋 여성을 신부로 취하려는 것에 반대하였습니다(삿 14:1-4). 자녀의 결혼에 부모가 이처럼 전적으로 관여하였는데 그렇다고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감정을 아주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남자는 자기의 사랑을 부모에게 알리기도 하고(창 34:4, 삿 14:2), 에서처럼 부모의 뜻에 반대하고 스스로 결혼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창 26:34 이하).
이스라엘의 역사 초창기에는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처녀들도 양을 치며(창 29:6), 물을 길어 다니고(창 24:13; 삼상 9:11), 다른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창 34:1), 남자들과 이야기도 하는 등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 남녀들은 자유분방하게 연애도 할 수 있었습니다(창 24:15-21; 29:11 이하).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은 두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 단계는 약혼단계이고 둘째 단계는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생활에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약혼은 현대의 약혼보다 훨씬 더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약혼한 여성은 계약 상태에 있기 때문에 충실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여성이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 발각되면 여성과 상대 남자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일단 약혼을 하면 파혼하기가 어려웠고 파혼할 경우에는 쌍방에 큰 불명예가 되었습니다. 약혼 기간은 최장 13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1, 2년이었습니다. 결혼식에는 친구와 양가의 친척들이 참석하고 약 7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결혼식 다음날 아침 신부의 부모들은 딸의 처녀성을 증명하기 위해 신방에서 사용한 침대 시트를 들고 나와 보관하는데, 이는 신랑이 다른 이유로 아내를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아 처녀가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신 22:13-15).
결혼은 정치적인 동맹만큼이나 부를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들 다 결혼으로부터 이익을 취했습니다. 확대가족은 직접적인 결혼지참금(dowry)과 간접적인 지참금(모하르, bride price)을 통해 이익을 취했습니다. 직접적인 결혼 지참금은 신부의 혼인지참금을 말하는데 신부의 혼수, 가구, 신부 가족이 신부에게 주는 선물 등으로 구성되며 가족 전체 재산의 5-25% 정도에 해당됩니다. 결혼교환의 성격을 띤 이들 선물에 대한 제약이나 조건들이 문서에 일일이 기록되었고 이를 통해 자녀양육, 이혼의 경우를 대비하였습니다. “모하르”는 남자가 처녀의 아버지에게 지불해야 되는 돈인 신부값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창 34:12, 출 22:16; 삼상 18:25). 그것은 처녀의 아버지에게 지불되나 사실은 여성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하는 것에 대비해 보험처럼 드는 것입니다(창 31: 14-16). 모하르의 액수는 처녀의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처녀 가정의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모하르는 아내에 대하여 지불하는 구입 가격이라기보다 처녀의 가족에게 주는 보상금의 의미를 더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딸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거나 남편이 죽어서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는 그 모하르가 다시 딸에게 귀속됩니다. 결혼 선물과 모하르는 다릅니다. 결혼 선물은 신랑이 신부의 처가에게 주는 선물은 결혼을 승낙한 사실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을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기로 하자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장식품과 옷을 선물하였고 그녀의 오빠와 어머니에게도 선물을 주었습니다. 결혼지참금이 성경에서 몇 번 언급되고 있지만 결혼식 선물을 결혼지참금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입니다(열상 9:16). 성경에는 결혼지참금 모하르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혼지참금을 주지 않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하지만 성경 외의 증거들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에도 결혼지참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리브가, 레아, 라헬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종들을 주었는데 계집종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최고의 결혼지참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족장과 왕들을 통해 보면 일부다처제가 흔했고 신명기 21:15에는 두 아내를 갖는 것은 합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지혜문학과 예언서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잠 5:15-19; 전 9:9; 사 54:6, 렘 2:2). 이스라엘에 언제부터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족장과 왕들은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보통 남자들은 한번 이상 신부값을 지불할 형편이 못되었고 더구나 여러 아내를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구약학자 웬함(Gordon Wenham)은 왕권시대동안 중혼에 대해 기록된 곳은 단 한군데인데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의 경우 첫째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둘째 부인을 택했고, 아브라함의 경우도 하갈과 사라가 동등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중혼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갈은 사라의 여종이었고 아브라함의 아내라기보다는 첩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성이 이혼을 제기하거나 집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가정생활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이혼은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혼에 대해 그다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명기 22:13-29에는 남자가 그의 아내와 이혼할 수 없는 두 가지 경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날밤 동침한 아내에게 처녀가 아니었다고 거짓누명을 씌우는 경우와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간통한 경우입니다. 이혼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신명기 24장에는 남편이 아내에게서 어떤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에 이혼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되는 일”이라는 표현은 아주 모호하여, 랍비들의 시대에 와서는 본문의 범위에 대한 논쟁이 구구하였습니다. 엄격하게 본문을 고수하는 샴마이 학파에서는 간음과 나쁜 행실만을 아내 추방의 원인으로 허용하였다고 해석하고, 이에 반하여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힐렐의 학파에서는 임의적인 원인으로도, 심지어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아내를 충분히 추방할 수 있는 원인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아내가 요리를 잘못하였다든지, 단순히 자기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마음에 든다든지 할 경우입니다. 이미 시락서(외경 집회서) 25장 26절은 남자에게 이런 명령을 하였습니다. “네 아내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그녀에게서 갈라서라.” 여성이 이혼을 요구할 자유는 없고 남편이 자기의 아내를 내쫓을 수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남편은 이혼증서를 여성에게 주어야 하는데 이 이혼 증서는 여성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혼증서를 가진 여성은 다시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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