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구약 성경의 배경: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구약성경에서 지형적으로 중심이 되는 시리아-팔레스타인은 지중해의 동쪽 해안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인접한 지역들과는 달리 흔히 시리아-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어떤 천혜의 지형학적인 조건이나 또는 문화적인 단일성이 없습니다. 이 지역이 지닌 최소한의 독특성이라고 한다면 '사이에 끼여 있는 땅'으로, 서쪽에는 지중해, 동쪽에는 사막이 있고 남쪽에는 이집트 그리고 북동쪽에는 메소포타미아가 위치해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사이에 끼여 있는 지형적인 위치 덕분에 여러 갈래의 무역경로들이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통과하게 되므로 부유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고대 세계의 여러 열강들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지역이 되었으므로 자주 외부의 침입을 받아 전쟁터가 되곤 했습니다. 

 

고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도

 

지중해에 접해 있는 서쪽 지역의 대부분은 바다쪽으로는 벼랑 또는 절벽이고 내륙 쪽으로는 평지를 이룹니다. 서쪽 해안 지역은 해양, 어업, 염색, 농업, 과수원재배,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산업들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복합적인 경제가 가능했습니다. 해안 평지의 동쪽은 산맥, 언덕들, 그리고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쪽의 고원들이 남쪽의 고원들보다 해발이 더 높습니다.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지형지세가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심하게 달라집니다. 북쪽에 있는 시리아의 다소 평평한 땅들은 남쪽에 있는 요르단 계곡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그 계곡의 해발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낮아지다가 가장 낮아지는 지점에서 사해를 이룹니다. 거칠고 황량한 사해의 수면은 해발보다 305m 이상 낮습니다. 요르단 계곡에서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땅이 나오는데, 그 땅은 중앙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광활한 사막 지역의 북쪽 가장자리로 연결됩니다. 이 지역은 짧은 거리의 여행에서도 풍성한 해안 평지들에서부터 높고 황량한 산들을 볼 수 있고, 이어서 정글에 가까운 요르단의 숲을 통과하고 나면 바로 사막 지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나안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의 땅을 지칭하기 위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이름입니다.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될 때 이름이라면 가나안은 유대인이 안에서 자신의 땅을 지칭할 때 사용한 이름입니다. 한동안 히브리 민족 왕조의 터전이었던 약속의 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끼여 있는 것 같은 이 지역 중에서 남쪽 부분입니다. 따라서 그 땅은 거리상 메소포타미아보다는 이집트에 가깝습니다. 이 땅과 이집트를 분리해 주는 것은 지중해 남동쪽 구석에 자리한 가자주변의 사막지역입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지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한 남쪽 지역에서 재연됩니다. 해안의 평원은 사마리아와 유대의 고지대에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 펼쳐진 고지대는 곧 요르단 계곡과 만납니다. 요르단 계곡을 지나면 목초와 숲 지역이 나오고 이 목초지의 동쪽은 광활한 사막이 경계를 이룹니다. 그리고 유대 남쪽으로는 언덕으로 이루어진 경사지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땅들이 전개되다가 시내 반도와 만납니다. 

 

성경시대 초기에는 가나안 땅에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도시들은 북쪽 지역의 우가리트왕국처럼 제법 크고 보다 강력한 도시들이었습니다. 기원전 11세기에부터 가나안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더하여 페니키아(현재의 레바논지역)의 도시들인 두로와 시돈, 요르단강 사해의 동편에는 에돔과 모압 그리고 북쪽에는 시리아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잊혀지고 거의 기억되지 않는 당시의 약소국가들의 명멸은 굴곡이 많은 역사를 남겨 놓았습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발전과 변화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개입과 관련해서 만이 이해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역사 중에서 그 지역에 터를 잡은 국가들이 완전한 독립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 지역 국가들은 동맹 또는 속국의 관계로 이집트 아니면 메소포타미아 제국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지형의 다양함과 개별 도시국가들의 난립에 비해서 그 지역에는 문황와 종교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일반적인 종교 성향은 이집트보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성향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 지역의 각 지방은 자체의 신들을 두고 숭배했는데, 자연세계와 결부된 신들과 특별한 장소들과 나라들과 결부된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들에 대한 신앙과 그 신들을 숭배하는 제사는 지형적인 경계뿐만 아니라 민족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알은 폭풍과 비의 신이므로 땅의 비옥함과 땅의 작물 생산성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의 남부와 북부 여러 지방에서 숭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각 지방에서 자신들의 신으로 숭배하던 각각의 바알은 그 지방의 독특한 신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현존하는 증거는 시리아의 해안 지방에서 바알을 숭배하던 신앙이 가나안 땅의 내륙지방에서 바알을 숭배하던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지형적 그리고 국가적인 다양성을 한 줄에 꿰어주는 것으로 종교적 단일성을 들 수 있고 또한 그 지역에는 어느 정도 언어학적인 단일성이 있었습니다. 북부 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들은 남부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들과 근본적인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자연적인 통합성의 결여때문에 다양한 토속적인 문화들과 문명들이 때때로 외부의 침략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의 정착에 의해서 보충되고 아울러 풍성하게 발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후르리족속, 햇족속, 블레셋족속, 아람족속, 그외의 다른 여러 족속들이 기원전 20세기에서 기원전 10세기 사이에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와서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동안 그 땅의 고유문화를 수용하여 자신들의 문화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시리아-팔레스타인은 어떤 면에서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였다고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종류의 혼합주의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과 함께 그 지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롭고 혼합된 문화를 생산했습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개혁의 배경과 원인  (0) 2024.03.30
미국의 제 1차 대각성 운동  (0) 2024.03.20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란?  (2) 2024.03.10
구약 성경의 배경: 이집트 문명  (0) 2024.03.09
청교도 운동  (0)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