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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에베소 (Ephesus)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북쪽의 ‘헤로무스’(Hermus) 강 하구에 있는 서머나와 남쪽의 ‘메안더’(Meander) 강 하구에 있는 밀레도의 중간을 흐르는 ‘카이스터’(Cayster) 강의 하구에 있습니다. 한편 카이스터 강은 전자의 두 강보다 크기는 작지만 두 강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또 에게 해와 연결된 만(灣)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강의 하구에 있는 에베소는 아시아의 여러 도시 중 외부와 해상 교류를 가장 활발히 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에는 그 도시의 심장부를 뚫고 나가는 큰 대로가 동쪽으로 뻗어 있었고, 그 도로가 당시 정치적, 군사적, 상업적인 중요성을 지녔던 도시인 라오디게아, 골로새, 아파메아, 메시디아, 안디옥, 다소, 시리아를 따라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에베소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소아시아의 육로의 교통의 중심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동•서의 교차로가 되었고, 일찍부터 상업적인 번창과 동방과 서방 종교 그리고  문화가 융합을 이뤘습니다. 

에베소의 시장(아고라)


에베소는 도시의 운명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 끝에 기원전 133년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도시가 되었고, 기원전 27년에 소아시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광대한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가 된 역사적 전환점으로 여겨집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에 대한 숭배가 강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수익에 위협이 됨을 느끼고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와 그가 동원한 무리들이 에베소 극장에서 바울을 대적하여 난동을 부렸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며(고전 15:32),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8-9). 

 

셀수스도서관


셀수스 도서관은 에베소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 중 하나이며, 도서관의 정면은 원래의 조각들로부터 세심하게 재구성되었으며 도시 전체에 걸쳐져 있습니다. 원래 서기 105-107년 로마 제국에서 로마 아시아의 총독을 역임했던 고대 그리스인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셀수스 폴마아누스를 기념하여 서기 125년에 지어졌습니다. 로마 시대에 학문과 초기 기독교 학문의 중심지로서 도시의 위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밧모섬으로 가는 항구였으며 사도 요한이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계시를 받아 기록했으며, 에베소에서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했습니다. 에베소를 거쳐간 인물들로는 사도 바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누가, 아볼로, 두기고, 디모데, 에라스도, 가이오, 아리스다고, 오네시모, 드로비모, 사도 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등입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며 사도 빌립의 딸들이 에베소에 살았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의 에베로 올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요한을 따라 함께 에베소로 와서 살았다고 합니다.

에베소의 성모나리아의 집


에베소 교회 

에베소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 된 것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인 A.D. 50년경입니다. 즉 그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지에서 전도 여행을 마치고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는 중에 에베소에 들러 단기간 전도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행 18:18-23). 그 후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여 적어도 2년 3개월 이상 머물면서 활발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3개월 동안은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지만 유대인의 반발로 회당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 동안 선교를 하며, 에베소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력을 다 하였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받고 마술사들이 자기들의 마술 책을 다 불태워 버린 사실이나 ‘주의 말씀이 흥왕 하여 세력을 얻으리라’ 등의 표현에도 나타나듯이 이곳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행 18:24-26, 19:18-20).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후에도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딤후 4:12)와 사도 요한 (계 1:11, 2:4-5)의 가르침을 받아 온 것으로 추정 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초기에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을 행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모범적으로 나타내 보였는데, 이는 에베소 교회가 당시 세계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편성하여 소아시아 일대의 복음 전파에 크게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계 2-3장)들이 지리적으로 볼 때 에베소를 중심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부채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나, 또 당시의 소아시아의 문화와 교통이 에베소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통해 볼 때 당시 에베소 교회의 복음 전파가 소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크게 파급되었음을 익히 집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에베소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에베소 교인들이 초기에는 성도간에 사랑이 많았으나 점차로 교회 안에는 서로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여러 인간관계에 심각한 갈등을 느끼는 교인들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엡 5:1, 6:9), 또 이런 사실은 사도 요한이 쓴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나는데, 곧 에베소 교회는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여러 시련 중에도 인내했으나 처음 성도 간의 사랑을 잃어버린 냉랭한 교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계 2:2-4). 그렇지만 에베소 교회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훗날 세워진 몇몇 대규모 교회의 유적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또한 A.D 431년에는 이곳에서 제3차 종교 회의가 개최되어 예수의 양성론(兩性論) 교리가 확정되는 등 교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