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은 본래 유목민족으로 아브라함과 그 백성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 옮겨 다녔습니다. 주전 15세기경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후 점차 유목에서 농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왕국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솔로몬왕이 죽은 후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누어집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점령되고 남유다는 주전 586년 바빌로니아에 끌려가게 되는데 이를 바빌론 유수라 합니다. 바빌론 유수를 기준으로 초기 이스라엘 교육과 후기 이스라엘 교육으로 나누고 각 시대의 교육적 특징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1. 전기 이스라엘의 교육
전기 이스라엘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없었고, 교육은 주로 가정과 확대가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쉐마로 알려져 있는 아주 탁월하고 기본적인 교육 선언을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이 쉐마를 암송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도 네 자녀에게 부지런 히 가르치며 집 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찌니라(신 6:7-9).
이 쉐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가르칠 교육내용은 쉐마와 토라와 지혜서였습니다. 토라는 ‘율법’이라고도 번역되는데 모세가 출애굽기에 제시하고 있는 가르침으로, 십계명과 사회법, 종교적 의무 등을 말합니다. 후에 왕조시대에 현자들이 출현하자 지혜서를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생활이나 직업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부모로부터 배웠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아버지로부터 농경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고 여자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집안일 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그 외에도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같은 유대인의 3대 절기 때는 절기를 지키면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삶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제사장, 예언자, 현자들이 공적 교사의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후배 제사장들을 훈련시키는 신학교육을 담당했고, 제사의식을 행하며, 백성들에게 제사와 경배, 절기 및 종교적 의무 등을 가르쳤습니다. 열왕기하 17:24-41이나 신명기 33:10절에 나타나 있듯이 제사장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직접 가르치는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장래 일을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로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사회개혁과 종교적 갱신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2. 후기 이스라엘의 교육
주전 586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를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이를 바빌론유수라 합니다.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멸망당하자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모국 땅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제2의 성전 건축은 주전 51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바빌론에 머물렀습니다.
회당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바빌론유수 때 세워졌을거라고 짐작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바빌론유수 이전에는 예배가 성전에서 드려졌으나 성전이 파괴됨으로 구심점을 잃게 되고 바빌론유수로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바빌론에 머문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애도하며 예배와 기도의 장소로 함께 모일 수 있는 회당을 건립하였습니다. 후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성전에 쉽게 가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회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한 마을에 회당이 하나씩 있어 새로운 사회·종교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회당과 연결된 학교교육기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학교교육은 회당에서 맡아서 하다가 회당과 병립된 건물과 제도가 생김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에는 초등학교인 벳 하세퍼(Beth Hassepher, 책의 집), 중등교육기관인 벳 하미드라쉬(Beth ha-Midrash, 연구의 집, 혹은 벳 탈무드, Beth ha-Talmud)가 있고 고등교육기관인 랍비 학교(Rabbinical Academics)가 있었습니다.
주후 64년에는 대제사장인 벤 가말라(Joshua ben Gamale)가 모든 유대부모들이 남자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록 의무화하였습니다. 후기에는 랍비라는 교사가 있어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를 둘러싸고 있던 그리스나 로마의 교육목표와 이스라엘의 교육목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스나 로마의 교육목표는 훌륭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율법을 알고 그것을 실제로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교육은 철저히 신앙적이고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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