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증이란?
일중독증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습니다. 장시간 그리고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다 일중독자는 아닙니다. 일중독자는 일을 만들어 내고 일을 찾아다니나 건전한 일 습관을 가진 자는 일을 즐기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건전한 자는 일하는 순간 일에 몰두하나 일중독자는 사교 활동이나 여가 시간에도 일을 하며 그들의 마음은 방황하고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립니다. 즉 일중독자는 외적인 필요보다는 깊은 내적 심리적 기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일합니다. 예를 들면, 학비를 벌기 위해 두세 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지거나, 자식들의 과외비를 마련하고 매달 들어가는 차나 아파트 융자금을 갚기 위해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 일중독증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을 등한히 하거나 일을 하나의 사회생활이나 친밀한 관계로부터의 도피처로 생각한다면 일중독증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중독증이라는 용어는 목사이며 심리학자인 Wayne Oates가 처음 사용했으며 “일중독자는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에 중독 되듯이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하여 신체적 건강이나, 개인의 행복, 그리고 인간관계와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있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 중독자에게 일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과 다름없습니다. 끊으면 금단 증상이 일어나고 쉽게 빠져나올 수 없으며 일이 없으면 불안해지거나 조울증 증세가 나타나고 지속적으로 일을 만들어 공급해 주어야 편안해집니다. 일중독 전문 심리학자 Bryan Robinson도 “일중독은 일종의 강박적 성격 장애로 스스로 일 습관을 만들 능력을 상실하여 다른 모든 생활을 배제하고 일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중독증
그리스도인의 지나친 열심도 종교적인 구실을 가진 일중독입니다. Oates는 일중독증이 심한 신학적 영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보지를 못합니다. 일중독자들은 일에 하나님보다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일 자체는 특별히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보다 더 우선 순위에 일을 둔다면 일은 나쁜 것이고 우리의 우상입니다. 일중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우리가 생산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일중독자는 일을 우상으로 만들며 구원도 일에 달려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습니다.
Max Weber는 청교도주의 특히 칼빈주의가 생활의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심리적 부산물을 낳았는데, 그 결과 이 내면의 금욕주의가 끊임없고 쉼이 없는 노동을 향한 심리적 성향을 낳았으며, 이 성향을 낳게 한 종교적 정신과 가르침이 사라진 후에도 이 기질은 계속되어 자본주의 정신을 낳게 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청교도주의가 개인을 세속적 직업에 전념하게 함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일종의 종교적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실업가가 회사에 대한 자신의 사명감들을 이야기하고 그의 헌신과 서비스가 회사 내에 있는 다른 사람과 회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음을 간증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의사나 목회자들에게 자기 가족을 떠맡기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특히 목회자들은 개인 시간과 일 시간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고 또 일의 성격상 일중독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보수주의 목회자들의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지나친 업무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회자 부인들은 버림받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이혼을 제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순교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자신들의 구원을 보장하는 방법이 글자 그대로 일로써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즐길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무엇인가 죄책감을 느낍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강박적으로 교인들을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기대를 만족시키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특히 한국 목회자의 경우 1년 52주 주일 강단을 지켜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주일 설교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교회의 모든 문제를 다 알고 관여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마치 목회를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해 하는 것처럼......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주께서 말씀하신 더 쉬운 멍에를 마다합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교인과 교회를 돌보느라 지친 목회자들은 영적인 지각 능력이 떨어집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과 자신의 가정을 해치면서 까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요셉, 다니엘, 느헤미야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결과 높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균형 잡힌 삶입니다. 균형 잡힌 삶이란 자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삶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인가? 혹은 내 뜻대로 하는 것은 아닌가?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가족, 그리고 일의 순서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다면 믿음은 시들고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일중독자였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깊이 반성하는 말이 전도서 2장 17-23절에 나옵니다. “일평생을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반면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가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역동적인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전도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하라고 명하신 분이 우리에게 또 쉬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신 후 쉬셨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과 똑같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스라엘의 생활에는 일과 휴식의 리듬이 있었습니다. 일곱째 날, 일곱째 해는 사람과 동물, 땅에 안식을 주었습니다. 휴식은 회복과 일을 위한 준비 이상의 것입니다. 휴식과 일이 유사한 활동이나 다른 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입니다. 휴식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흔히 휴식하지 못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시 95:8-11, 히 3:7-4:10). 참 휴식은 기술이나 문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짐을 지신 구세주를 믿고 의지함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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