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 인사 (1:1-2)
* 서언 부분에는 바울의 일반적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발신자, 수신자, 인사, 감사와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발신자, 수신자, 인사는 그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의 편지 형식입니다.
* 종은 일꾼과는 달리 노예의 뜻입니다. 당시 노예는 소유권, 생사권, 생활권이 온전히 그 주인에게 있습니다. 주인에게 복속되어 선택권이 없습니다.
*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유니게) 사이에서 태어나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습니다(행 16:1, 딤후 1:5). 그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바울을 수행하였고(행 16:3) 그 후엔 바울의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 옥중생활을 할 때 감옥에 같이 있었고(골 1:1), 나중에 그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있다가 순교하였습니다.
* 감독들과 집사: 본서만이 유독 교회지도자들을 수신자로 따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오늘날 장로에 해당되고 집사들은 장로들을 돕는 자들입니다.
2. 감사와 기도(1:3-11)
* 인사를 한 후 감사와 기도를 하는 것은 바울서신의 일반적인 형식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에서 착한일이란 1) 앞절과 연결시켜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복음 사역에 참여한 것, 2) 뒤에 나오는 구절과 연결시켜 빌립보 교인들이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된 것, 3) 좀 더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신자들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은혜의 모든 사역들, 1), 2), 3) 어느 것이나 가능해 보입니다(고후 8:6)
* 그리스도인이란 그 속에서 착한 일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착한 일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어 냅니다. 함께 모여 단체를 구성하고 규정과 법규를 정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 스스로 교회를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일을 일부나마 우리의 노력과 행동으로 지속시키도록 명하시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란 심판 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구원 사역이 마무리 되는 장엄한 완성의 날입니다. 의가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왕으로 다시 오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날이 주의 날입니다(히 12:23).
* 복음을 변명함은 복음에 대한 일반적인 변명을 가리키기보다 복음으로 인해 투옥된 후 바울이 재판장 앞에서 했던 변명을 가리킵니다. 확정함은 이곳과 히브리서 6:16에만 보이는 낱말로서 변명의 결과 생기는 무죄성의 인정을 뜻합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지식을 나타내는 γνῶσις 와는 달리 좀 더 깊고 온전한,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지식을 가리킵니다(고전 13:12). 그것은 주로 종교적, 도덕적인 사항들과 관계된 영적 지식을 말합니다.
* 사도 바울은 참으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고 지식을 전하기 전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을 경계하며, 지식으로 통제되고 제어되지 않는 사랑을 경계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계속 부딪히는 유혹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순전히 자신의 체험과 감정에 의존해서 사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가르침이나 교리나 신조를 싫어하며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정반대의 위험도 있습니다. 순전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이고 학문적으로만 교리에 관심을 보일 위험, 무미건조한 신학적 입씨름에만 관심을 보일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유혹을 피하려면 우리의 사랑은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자라나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 총명은 신약에서 이곳에만 사용된 것으로 판단력, 또는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바로 이런 판단력, 분별력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과 그리스 종교가 성하면서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이 거의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기원후 200-300년 사이에 거의 대부분의 이단이 나타났습니다. 분별의 영, 판단의 영이 필요했습니다. 종교적 도적적 지식을 겸하고 도덕적인 분별력이 있을 때 사랑이 더욱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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