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성인처럼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2회에 걸쳐 어린이 영적 세계에 대해 탐구해 보려 합니다. 어린이 영적세계(1)에서는 어린이 영성연구가 로빈슨(Edward Rovinson)의 연구와 코울즈(Robert
Coles)의 연구를 요약해 보려 합니다.
1. 어린이 영성에 대한 기존의 견해
골드만(Ronald Goldman)은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을 기초로 인간의 종교발달단계를 직관적 종교기, 구체적 종교기, 추상적 종교기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피아제에 의하면 청소년기, 즉 형식적 조작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은 상징이나 비유를 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골드만은 피아제의 연구를 종교적 앎에 적용하여 종교적 지각이나 개념들은 직접적인 감각 데이터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다른 지각이나 개념으로부터 형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신성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청소년에게는 드물고, 어린이의 경우에는 거의 전무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청소년까지는 성경, 그중에서도 특별히 비유들을 가르치는 것을 유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최근의 어린이 영성연구가들의 견해
어린이 영성연구는 어린이가 종교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인지발달심리학의 어린이 종교성에 관한 입장을 비판하면서, 어린이를 영적 존재로 인정하고 종교적 사고를 하는 존재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이가 인지-언어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곧 종교적 영적 앎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비약이며 어린이의 종교성을 단순히 지적인 차원으로부터 평가하는 것은 어린이의 종교성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새로운 관점의 어린이 교육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골드만의 이론은 어린이의 종교를 표현하는 방식이 곧 성경 내용을 어떻게 인지하고 사고하는가? 라는 어린이의 인지능력에 편중시킴으로써, 어린이를 전인적 존재로 보지 못합니다. 어린이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인지뿐만 아니라 정서, 의지, 감각, 직관, 그리고 영성 등 어린이의 전존재적인 전인적 통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골드만의 연구는 어린이의 언어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 인해 어린이가 언어 표현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앎을 소유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교회교육을 통해 습득된 교회의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들의 삶속에서 소위 이름 없는 권능자의 현존에 대한 심오한 경험을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표출하고 표현하기에는 그들의 언어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지주의적인 공교육에 의하여 이러한 경험을 억압하게 됩니다. 임상경험을 통해 어린이도 죽음, 질병, 삶의 의미, 자유의 위협 등 실존적 한계에 직면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신비한 경험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영성” 연구는 어린이 영성 자체를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린이에게 영적인 경험이 있는가?"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성연구가들은 어린이가 특정한 종교의 학습된 신관을 바탕으로 한 성인적 영성의 형태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린이 나름대로의 영적 경험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어린이 영성”을 정의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어린이 영성연구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던 로빈슨(Edward Robinson)도 그와 같은 관심으로 어린이의 종교체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1) 로빈슨의 연구
알리스터 하디 연구소 (Sir Alister Hardy Institute)의 종교체험에 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빈슨은 4,000명의 성인들에게 “자신의 삶이 어떤 초월적 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꼈던 경험”을 묻는 설문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는 설문에서 “어린이 시기”에 관한 그 어떤 언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자 중 15%에 해당하는 600여 명의 성인들이 자신들의 생애 초기에 있었던 종교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로빈슨은 응답자들이 “내 생애의 가장 깊은 종교적 체험은 내가 4-5세 무렵에 왔다" “내 전 생애는 6세 때 내게 열린 놀라운 진리 위에 세워졌다" “나는 오늘날 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느끼는 영적 힘을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느껴왔다" 등과 같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유아기에는 종교적 체험이 불가능하다는 피아제적 패러다임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였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성인이 이미 유아기에 종교적 체험을 하였고, 그 체험은 그 사람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세상을 보는 기본적 안목의 뿌리인 “원초적 비전"(original vision)이 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은 이미 어린 시기에 ‘하나님’, ‘죽음’, ‘탄생’, ‘죄책감’ 등과 같은 실존적 물음을 던지고 있으며, 이 같은 물음들은 어린이가 종교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정적안 예로 로빈슨은 한 면담자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섯 살 때 일어났던 이 일은 내 삶의 하나의 기초적 경험이 되었다. 나는 그때 개미들이 떼를 지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내가 너무 커서 개미들이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미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였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돌렸을 때 그곳에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고, 내 위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구름이 떠가고 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이 광활한 곳에서 내가 무지하게 작은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작아 나 하나 있고 없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존재... 갑자기 내가 개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 광활한 세계에서도 어떤 큰 분이 나를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와 같은 로빈슨의 이해는 어린이, 특히 유아의 경우 피아제식의 패러다임에 의하면 전혀 종교적 이해를 할 수 없는 “전종교적” 수준에 있다고 이해되어 왔지만, 그들의 인지발달이 미성숙하다고 하여 그것이 곧 이들에게 종교적 체험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성인적 발달의 핵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오리지날 비전』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 종교체험의 보고들은 어린이들이 주로 ‘자연’, ‘예술’, 그리고 ‘예전’의 자리에서 가장 많이 그와 같은 종교적 경험을 했었던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2) 코울즈(Róbert Coles)의 연구
코울즈(Coles)는 성인이 아닌 아동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통해서 어린이가 영성적 존재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코울즈는 500여 명의 어린이들을- 영미권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아동들, 그리고 종교적 가정에서 성장한 아동뿐만 아니라 비종교적 가정에서 성장한 아동들에 이르기까지-대상으로 한 폭넓은 인터뷰와 인터뷰의 해석을 바탕으로 어린이가 영성적 체험을 하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이를 『아동의 영적 삶』이라고 하는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코울즈는 이 책에서 8-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린이들에게도 분명 영적 삶(spiritual life)이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배경에서 성장한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어린이, 즉 특정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은 어린이에게서조차 그것은 분명히 확인되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의 ‘영성’(spirituality)이란 특정의 ‘종교’(religion)와 직접적으로 훈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코울즈는 어린이의 영성은 ‘종교’가 없이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거나 그렇지 아니하거나 간에 모든 어린이는 지속적으로 “영적 탐색"(soul searching)의 여정 가운데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둘째, 종교는 어린이에게도 필수적 -요소입니다. 코울즈는 물론 어린이들에게 특정 종교의 학습된 경험 없이도 영성적 삶이 존재한다고 하였지만, 동시에 어린이들에게도 ‘종교’가 매우 핵심적이고 필수적 요소라고 하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히 독실한 종교 가정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각 종교의 신학과 종교적 삶에 영향을 받고 자라나며, 그것이 이들의 삶과 생각을 이끌어가는 중심적 힘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가정에서 성장한 어린이들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탐색하였는데, 어린이들은 각각 자신의 성장배경이 되는 종교의 전통이 공유하는 신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셋째, 코울즈는 어린이들은 물론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부모의 신앙, 가치, 종교적 삶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이들의 영혼 안에는 부모의 영향 이상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부모의 영향과 상관 없이 일어나는 어린이의 영적 경험에 관한 수많은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코울즈는 비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교회에 거의 다니지 않는 어린이들의 종교적 발언도 조사했습니다. 이 어린이들 또한 삶의 의미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였습니다. 어린이가 단순히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에만 머물지 않는 그 어떤 영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예라고 하는 점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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