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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육 & 심리

이중직 목회자가 겪는 심리적 갈등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일반 목회자들에 비해 이중직 목회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많은데, 특히 시간 부족, 지원 부족, 정체성 혼란, 고독, 탈진, 죄책감, 낮은 자존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정체성 갈등과 정체성과 직, 간접으로 관계있는 죄책감과 낮은 자존감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1. 정체성의 갈등

 

이중직 목회자가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정체성에 관한 것일 겁니다. 정체성이란 무엇입니까? 정체성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정체성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일관성 있게 지각하는 것과 사회가 개인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Horowitz, 2012),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합니다. 또한 정체성은 안정적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것으로,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발전합니다(Marsahll, 1994, p. 14).

 

목회적 정체성(pastoral identity)은 개인의 총체적인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목회영역에 해당되고 신학적 가치관, 지각, 그리고 신앙과 관계가 있습니다(Marshall, 1994, p. 18). 목회적 정체성은 성경의 신학적 틀, 전통, 이성 그리고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Marshall, 1994, p. 22).

 

종교를 개인적인 헌신과 신학적인 개념의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성경보다 문화에 더 깊이 뿌리박고 있고 사회의 가치관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종교를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현상으로 여겨서 종교가 문화를 넘어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보다 현대적인 접근 방법은 이 둘을 결합한 것으로 종교는 사회적 상태와 초월적인 종교적 신앙에 뿌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Flyant, 1982). 즉 종교적 교리나 개념도 경전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화와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목회적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중직 목회도 성경에서 제시하는 것과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중직 목회자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첫 번째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직 목회로의 부르심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입니다(Dorr, 1988, p. 74). 이중직 목회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 그리고 이중직 목회자 자신은 이중직 목회에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중직 목회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이 부분적으로는 이중직 목회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단이나 공동체에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나 믿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인데,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이중직 목회가 충분히 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정체성 갈등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신학적 근거 외에도 이중직 목회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이중직 목회에 대한 문화적 인식에 기인합니다. 전통, 교단, 교회와 같은 문화나 공동체의 인정 여부입니다. 전통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 혹은 교단이 이중직 목회를 인정하지 않으면 정체성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는가 하는 부르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Bicker, 2007, p, 57). 이중직 목회자가 타인으로부터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목회 자체가 너무 힘들면, 과연 자신이 이중직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보았듯이 이중직 목회자로의 부르심도 독특한 종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직 목회자가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기 때문에 맡은 역할 사이에서 겪게되는 갈등입니다. 역할 갈등은 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맡은 다른 역할들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은 직업과 인간관계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배우자이면서 부모이고, 형제자매이며, 동시에 사회에서 맡은 직위가 있습니다. 모든 정체성은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의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 정체성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고 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서로 그리고 외부세계와 상호 작용하여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냅니다(Cooper-White, 2011, p. 197).

 

어떤 정체성은 직업 정체성처럼 좀 더 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반면, 어떤 정체성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며, 그 사람의 전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모든 인간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중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본래 루터가 “모든 크리스천은 여러 다양한 직을 갖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를 해석한 것입니다(Miller-McLemore, 2008, p. 171). 이중직 목회자가 다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듯이 겸직을 하지 않는 목회자들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중 정체성을 경험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중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역할을 관리하는 것은 역할 충돌과 시간 압박으로 이어져 일상의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한 역할에 소비되는 시간은 종종 다른 역할에 소비되는 시간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역할 충돌과 파급 효과가 스트레스, 피로, 수명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Riordan, 2013). 그러면 어떻게 다중 역할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서로 다른 정체성이 서로 단절될 필요는 없고, 대신 온전한 한 사람을 형성하기 위해 여러 요소들이 통합될 수 있습니다. 마치 다른 실들이 규칙적으로 얽혀서 하나의 직물을 짜듯이 여러 정체성이 씨줄 날줄로 서로 교차하여 하나의 온전한 정체성을 이룹니다.

 

이중직 목회자는 여러 가지 재능을 통합할 수 있습니다. 직업적 정체성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다중 경력이나 직업은 단일 직업이 수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열정, 재능, 관심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하고 여러 가지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Brown, 2010, p. 114).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 사람의 직업이나 정체성이 같은 사람 안에서 다른 직업이나 다른 정체성에 도움을 주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직업들 사이에서 기술이 서로 전이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역할이나 정체성을 잘 통합하는 것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다중 정체성 사이에 유연한 관계가 요구됩니다(Lindner, 2016, p. 78).

 

이중직 목회자도 다중 정체성에 목회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더 첨가된 셈입니다. 두 직업을 가지는 것은 두 모자를 가지고 그 상황에 맞는 한 모자를 쓰는 것과 같고, 두 역할 사이에서 이동할 때 정체성을 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합니다(Hargdon, 1983, pp. 29, 33). 정체성을 통합하고 정비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 귀히 여기고 우선순위와 경계를 정하며 적절히 통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중성을 가진 본보기 인물입니다. 그는 유대인, 로마 시민, 학자, 상인, 전도자, 교사, 그리고 여행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그는 천막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의 선교사로서 자신의 두 가지 직업을 통합한 이중직 목회자의 본보기로 또한 인정받고 있습니다. 텐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그의 일은 그의 사도적 정체성 뿐만 아니라 그의 선교활동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중직 목회자들이 주어진 다중 역할을 즐기고 각 역할의 강점을 살리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개인의 전체적인 정체성은 삼위일체의 역동성 처럼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이중직 목회자(출처: Dribbble)

2. 낮은 자존감

 

많은 이중직 목회자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는 교회에서 전적으로 지원받는 전임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이 이중직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4년도 이중직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중직 목회자가 신대원에서 똑같이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했는데 이중직 목회자 자신은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사례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그리고 교단의 일반목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에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Bickers, 2013, p. 34).

 

둘째는 이중직 목회자들의 낮은 자존감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크기로부터 오는 듯합니다. 이중직 목회자들은 대부분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Bickers, 2013, p. 34).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양적인 성장을 보기 원할 것입니다. 보다 큰 교회는 사역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은 교회를 맡고 있는 이중직 목회자의 학교 동기가 수천명의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면 이중직 목회자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지 않나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런 비교가 자신의 자아를 힘들게 하고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성실하고 신실하여야 하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감정은 여전히 힘듭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크기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이중직 목회자냐 아니냐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목회에 대해 그릇된 미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목회의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야하고, 성경적인 기준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John Maxwell은 성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통적인 성공에 대한 정의는 성공을 도달하기 위한 목적지로 여기거나 성공은 약간의 마법 공식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성공을 여정,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50년 이상 성공한 사람들을 알고 이 주제를 연구한 결과, 이것이 제가 받아들인 성공의 정의입니다. “성공은 당신의 삶의 목적을 알고, 당신의 최대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 성장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Maxwell, 2014)

 

그는 성공의 정의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향한 그 분의 목적을 알고 우리의 잠재능력의 최대한까지 성장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Charles Stanley도 “성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워놓으신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Stanley, 2000, p. 3). 성공에 대한 이런 정의들 어디에도 우리 교회의 크기와 다른 사람의 인정 혹은 직업에서의 성취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중직 목회는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실제적인 사역입니다. 이중직 목회자가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고 그들의 삶에 차이를 만든다면 성공한 사역을 한 셈입니다.

 

3. 죄책감

 

죄책감은 수치심이나 양심의 가책으로 정의될 수 있고 죄책감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입니다. 죄책감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것입니다. 즉 죄책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판단아래에 두는 것입니다(Wilson, 1987, p. 19). 죄책감의 영향은 종종 불편함을 줍니다. 그것은 슬픔, 또는 신체적인 불편함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Beldon, 2015).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의로우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Wilson, 1987, p. 26).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목회에만 전념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여깁니다. 목회자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다른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그리고 헌신이 부족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중직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Samushonga, 2019). 그리고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도 축복하시지 않고 교회를 성장시켜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가집니다. 현재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목회자 이중직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중직 목회자는 자신이 소속된 교단에서 규정해 놓은 이중직 금지조항을 어기고 있다는 현실에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갖고 있습니다(강춘근, 2017).

 

뿐만 아니라 이중직 목회자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를 들면, 영적생활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매일 충분히 성경을 읽지도 못하고 기도도 하지 못하는 등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함으로 영적으로 메마르고 다른 사람에게 영적으로 공급할 수 없습니다. 사역에서 설교가 중요한데 설교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죄스럽고 미안합니다.

 

또한 이중직 목회자도 전임목회자와 같은 책임을 교회에서 맡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행정업무도 보아야 하고 교인들과 상담도 하고 심방도 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고 교회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 외에도 시간 부족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을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죄책감이 듭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장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다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해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것을, 우리의 부족함을, 취하시고 받으셔서 풍성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섬기고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죄책감을 들게 하는 큰 요인이 시간 부족입니다. 시간관리를 효과적으로 잘하는 기술을 익히면 가족이나 영적 생활 등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을 혼자 다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방법을 배우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중직 목회자들은 사례비를 줄 수 없는 교회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목회에만 전념하는 것이라면 가능하면 전업 목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중직 목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회자들의 관심이 분산될 때 오는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이중직 목회자가 이끄는 교회는 그들의 목회자가 영혼을 돌보는 일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으로 목회자를 배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 글은 학술지에 발표된 필자의 논문 "이중직 목회자가 겪는 심리적 갈등"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