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이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 제한되고 사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구조가 여성들을 지도자의 위치에서 완전하게 제외시킬 정도로 엄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지도자로 출현합니다. 그중에서 지도자로서 활약했던 미리암, 드보라, 훌다, 이 세 사람에 대해 탐구해 봄으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가늠해 보려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일단 여자가 직무를 맡았을 때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고 취급된 경우는 없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암과 드보라, 그리고 훌다를 여선지로,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다는 사실은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일반 백성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드보라와 훌다는 결혼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사회적, 종교적 역할들이 그들의 가정적인 위치를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미리암
미리암은 보통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 알려져 있고(출 15:20-21), 미가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낸 민족의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미 6:4), 출애굽 후에는 최초로 노래한 여선지자로(출 15:20-21)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미리암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고 문둥병에 걸렸던 반역의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민 12:1-16). 미리암의 노래는 출애굽 사건에 대한 가장 오래된 보도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보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는 노래와는 달리 이 노래는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제사에서 부른 노래인 듯하고, 미리암은 제사에서 활약하던 지도자인 것 같습니다. 미리암에게 여선지자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격려한 영적 은사를 지닌 민족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드보라
이스라엘 왕국이 성립되기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한 주요 인물로는 대개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을 꼽습니다. 여기에 꼭 끼어야 할 인물이 드보라인데, 드보라는 여선지자이며 사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삿 4:4). 드보라는 예언자와 사사라는 두 직분으로 소개되는 구약의 유일한 여성지도자입니다.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미리암의 노래와 함께 구약성경에 전해진 가장 오래된 자료로 손꼽힙니다. 사사는 대개 대사사와 소사사로 나누는데 소사사는 평상시에 종교적 제의 문제나 공동체의 법적 질서유지 등을 관장하였고, 대사사는 일단 전쟁의 위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막아 보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아마도 드보라는 여예언자로서 소사사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가나안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가나안에 맞서 싸우도록 이스라엘을 격려하고, 군대 장관 바락을 임명하고 또 바락을 도와 직접 전쟁에도 참여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사시대 초기인 드보라시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힘들고 고달픈 시기였습니다. 야훼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려던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민족의 최고 지도자였던 드보라에게 자문을 요청하러 성문으로 갔습니다. 드보라는 깨어 일어났고 가나안 연합군에게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바락을 군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당시 민족의 최고 지도자였음을 말해줍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 초기에 있었던 민족의 위기 상황을 극복한 위대한 민족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멀리는 출애굽의 모세, 가깝게는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민족의 어머니로서 백성들을 격려하였고 바락을 임명하여 민족을 구원하였으며 동시에 여호와를 수호하였습니다.
3. 훌다
구약성경에서는 여예언자의 등장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초기 이스라엘의 두 여성 지도자 미리암과 드보라를 제외하면 왕국시대에는 이사야의 부인이 여예언자로 칭해지며(사8:3), 훌다가 여예언자로 불립니다(왕하 22:14-20; 대하 34:22-28), 훌다는 요시야 왕 당시 무척 잘 알려진 인물인 듯합니다. 요시야왕의 관리들이 아무런 주저 없이 그를 찾아 여호와의 뜻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외에 “여호와 보시기에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있습니다. 특히 요시야는 요시야처럼 여호와로 돌아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모세의 법을 온전히 지킨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습니다(왕하 23:25). 앗수르의 지배하에서 앗수르 신상을 세우는 등 예루살렘과 지방 성소들이 우상숭배로 크게 훼손되어 있었던 것을 이들이 정화하고 개혁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등극한 지 제18년이 되던 주전 622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한 다음, 성전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율법책 한 권이 요시야 종교개혁의 바탕이 되었습니다(왕하 22:3-13, 대해 34:8-21). 요시야는 여예언자 훌다를 통하여 이 책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이에 근거해서 이스라엘에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왕하 23:1-24;대하 34:29-35:19). 요시야왕이 여호와의 뜻을 물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악볼과 사반과 아사얀이 여예언자 훌다를 찾았습니다. 아무런 주저 없이 훌다에게로 야훼의 뜻을 물으러 간 것을 보면 그는 당시 매우 유명한 예언자였음이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은 요시야의 궁중 관리들이 왜 그 당시 소명을 받은 지 5년이나 되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찾지 않고 훌다를 찾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은 가부장적 사회이고 남성우위의 사회였습니다. 물론 많은 문헌들이 남성의 입장에서 쓰였고 남성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었기 때문에 왜곡된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중심으로 조망해 보면 초기 이스라엘에서는 남녀가 어느 정도 평등하였으나 국가체제를 형성해 감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들은 차별받고 역할은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적 구조가 여성들을 지도자의 위치에서 완전하게 제외시킬 정도로 엄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지도자로 출현하였습니다. 성경은 미리암을 선지자로 언급하고 있고 드보라는 정치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자로 40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며 선지자와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요시야왕 때의 훌다는 여선지자로서 중요한 직임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여예언자들의 사역은 히브리 예언 전통에서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데는 남녀의 차별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별 때문에 직분이나 사역의 영역에서 제한을 받거나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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