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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방언

1. 방언의 은사에 대한 관점

 

치유와 예언, 방언과 같은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약성경이 기록된 당시로 제한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고, 복음주의 내에서도 몇 가지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날에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없다고 주장하는 중지자(Cessationist)들로, 예언, 방언, 치유와 같은 은사는 1세기에 사도들이 교회를 세울 때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깁니다. 개혁파와 세대주의자들이 흔히 중지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중지자들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오순절파, 카리스마파 그리고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 있고, 이들 모두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파와 카리스마파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순절 파는 1901년 미국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는 교단이나 그룹을 말하며 주로 하나님의 성회(the Assenbly of God),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in Christ) 등이 이에 속합니다. 그들은 1) 신약성경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는 현대에도 유효하며, 2)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체험한 증거로 방언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카리스마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카리스마 부흥 운동에 그 역사적 기원을 갖는 그룹으로 신약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를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필수적인 표적이라고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카리스마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성령세례가 회심에 뒤따르는 것인지 그리고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세례의 표시인지 여부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카리스마 운동가들은 자신들의 교단 만들기를 꺼려 기존의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 내에서 부흥을 추구합니다. 카리스마운동의 대표자는 700 클럽의 팻 로버슨(Pat Robertson)을 들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풀러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에 의해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모든 믿는 자에게 신약성경의 영적 은사를 사용하기를 고무하고, 복음 선포가 징조, 경이, 기적과 같은 것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가 회심을 경험할 때 성령세례를 체험하며 그 이후의 경험들은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방언 은사가 오늘날도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것을 오순절파나 카리스마파처럼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제3의 물결의 대표자는 빈야드(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목사 죤 윔버(John Wimber)를 들 수 있습니다. 중지파, 오순절파, 카리스마파 그리고 제3의 물결이 전체 복음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 어느 그룹에도 소속되지 않는 다른 한 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한 은사가 1세기에만 제한된다고 주장하는 중지자들을 지지하지도, 이러한 은사를 오늘날에 사용해야 된다는 입장을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기이한 은사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방되어 있으나 이런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 오용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염려합니다. 또 방언하는 것을 성경이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성경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행해지는 사례들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은사들에 대해 개방되어 있으나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주의의 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가 은사보다는 전도와 성경공부들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순절파나 카리스마파들이 가져온 혜택인 예배갱신이나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방언(출처: New World Encyclopedia)

2.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방언

 

언어학자들은 오랫동안 방언을 언어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방언이 이미 알려진 언어인가?” 그리고 “방언이 언어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방언을 하는 집회에 참석한 외국 방문객들이, 외국에 가본 적도, 그 나라의 언어에 접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방문객 자신의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방언은 이미 알려진 언어가 아니라는 데 일치합니다. 물론 언어학자가 방언을 분석할 때 현재 사용되고 있는 3, 000개 이상의 세계 언어와 일일이 대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로 방언을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은 부족합니다. 니다(Nida)는 방언을 녹음하여 25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150여 명의 언어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 본 결과 기록된 내용이 실제 언어와 유사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오순절의 방언은 그 방언을 들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행2:6). 이 본문은 난해하여 고대로부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부들은 대개 오순절 방언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하여 주신 은사로 해석하여,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말한 언어 기적이었다고 봅니다.

 

이처럼 때때로 방언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방언이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임을 고전 14:2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여러 다른 교회에서 방언의 경험에 기초하여 내리는 바울의 지시이면서 교리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경우에 외국어로 방언을 하게 하실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방언은 거의가 이미 알려진 언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면 방언은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토론토대학의 교수 사마린(William Samarine)은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재잘거리는 언어로, 표면적으로는 음성학적으로 언어와 유사(Pseudo-language)하지만 일관성 있는 구조가 없어 본질적으로는 언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호켓(Charles Hockett)은 인간 언어에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16가지 특성이 있다고 했는데, 방언은 5가지 정도 중요한 언어의 특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또 언어는 보통 30개 정도의 음소를 가지며, 음소의 수가 가장 적은 언어의 경우 13개 정도의 음소를 가집니다. 이에 비해 방언은 6개 정도의 음소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음소가 적기 때문에 방언이 실제 언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방언을 실제 언어라고 한다면 아주 초보적인 언어이거나 어린아이들의 초기 언어와 유사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방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국어에 사용하는 음소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방언은 영어의 기본적인 언어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의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방언이 방언하는 사람의 모국어를 반드시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이 때로는 개 짖는 소리, 휘파람 소리, 신음소리 혹은 동물의 소리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방언이 언어의 인지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해석상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방언을 녹음하여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통역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르게 해석합니다. 더구나 기록해 둔 방언을 읽은 통역자들이 같은 단어에 대해서도 다른 의미로 해석합니다. 이런 일관성이 없는 점에 대해 통역자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해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사마린은, “아마도 카리스마파들이 주장하듯이 방언은 땅의 언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천상의 언어이기 때문에 인간 언어의 특성이 결여되어 있고 여러 의미로 통역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이 언어의 인지적 의미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신음, 억양, 한숨, 쉼, 제스처들이 다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이것이 언어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방언이 인지적 의미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감정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 운동가 마크 카트레지는 “방언은 정상적인 언어가 부적절할 때 사용되는 기도 언어이다. 그것은 언어를 초월하나 언어의 형태를 빌린 것이다. 그것은 정신의 언어라기보다 영의 언어이며 머리 언어라기보다 마음의 언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증거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방언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일까요? 학습된 것일까요? 많은 경우 혼자 기도하는 중에 방언이 터져 나왔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방언을 학습된 언어 행동으로 보기도 합니다. 실제 사례를 통한 연구들에 의하면, 방언을 하게 된 사람 가운데는 자신이 나가고 있는 교회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표시로 여기고 무언중에 강요하기 때문에 방언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고 방언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여 방언을 하게 됩니다. 스파노스(Spanos)와 그의 동료의 연구가 이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방언을 모르는 사람들이 방언 훈련에 두 세션 참가하고 나서 참여자의 70%가 방언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방언은 혼자 기도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지만 학습으로도 가능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