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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고찰

1990년 중반 이후 교회성장이 정체되면서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김승호, 2015).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을 갖고 신학을 했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아 사역지 구하기가 힘들고, 사역지를 구하고 목회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재정적으로 충분히 지원하는 교회가 많지 않아 당장 생계를 꾸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약 80% 정도는 목사의 생계비조차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조성돈, 2016). 미국의 경우도 목회자의 3분의 1이 이중직을 가지고 있고(Stetzer, 2017), 빈야드(vineyard) 교단은 목회자의 절반이 이중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Peterson, 2018). 지속적인 교세감소와 함께 최근 들어서는 Covid-19의 장기화로 헌금이 줄어들어 목회자 이중직은 더 늘어났습니다. 목회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진 생활 목회자들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이 8천 명에 이르고 목회자 이중직 연대 운동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오요셉, 2020).

이중직목회자(출처:EFCA Today)

1.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이중직은 영어로 bi-vocation인데 bi-vocation은 둘을 의미하는 bi와 부르심을 의미하는 vocation의 합성어입니다(Harper, 2020). vocation은 특별한 부르심 혹은 경력에 대한 특별한 요구, 혹은 성향으로, 오늘날에는 vocation이 일이나 직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bi-vocation은 두 개의 직업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중직 목회자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동시에 교회밖에서 파트타임이나 전임으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자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중직 목회자를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 교회에서 전임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교회 바깥에서 전임이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목회자를 의미합니다(Helsel, 2019).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자 이중직의 타당성 여부를 논의할 때,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 이중직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에서 찾습니다. 구약의 왕, 제사장, 예언자의 직무와 목회자의 직무를 동일하게 보고 이 직무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목회자에게 전수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왕, 제사장, 예언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전문인이기 때문에 구약에서처럼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오직 그 직무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김한옥, 2017). 그러나 구약의 왕, 제사장, 예언자를 목회자의 전신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김한옥, 2017; 류호영, 2016). 일반적으로 이중직 목회의 기원을 신약시대의 바울에서 찾습니다(Samushonga, 2020).

 

예수님께서 그의 열두제자를 유대에 말씀을 선포하러 보낼 때 일하는 사람이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0). 예수님께서 70인을 보내실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눅 10:7).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부, 세리 등 다른 직업이 있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을 때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복음 전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중직을 가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사도 바울은 이중직 목회자였습니다(고전 4:12).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업을 가졌습니다(행 18:1–3).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사도들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1-15에서 바울은 사도가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권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군인이 자기 비용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사도들이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아니할 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섬기고 있는 동안 다른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고후 11:7-12).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신학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관성 있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재정적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살전 2:7–9, 살후 3:6–8). 재정적인 도움을 받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기를 원했고 자기가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직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들을 믿음에 이르게 할 기회를 주기 원했을 것입니다. 신학자 F. F. Bruce는 그 당시 랍비와 서기관은 그의 가르침에 대해 돈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Bruce, 1986, p. 367).

 

아무튼 바울은 세 가지 방법으로 재정을 다루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자신을 위해서 재정적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고, 둘째는 그가 사역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으며, 세째는 그는 지역교회의 재정을 관리하지 않았습니다(Dizon, 2019에서 재인용).

 

2.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역사적 이해

 

바울의 자비량 목회는 로마제국 전체에 교회가 형성되는 초기 3세기 동안은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Dorr, 1988, p. 22).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스스로 양을 치거나 농사를 짓거나 직물을 짜는 일을 통해 생계를 꾸리며 목회를 하였습니다. 2세기의 문서인 “디다케”에 기록된 글이 그 시대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데 만일 사도들이 돈을 요구하면 그는 거짓 선지자라는 기록이 있습니다(Gustafson, 2016에서 재인용).

 

4세기 경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후 로마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문 성직자 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聖)과 속(俗)이 나누어진 것은 중세인데, 명상적인 종교생활을 육신적인 일상생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중세에는 수도원이 발달했는데 수도사로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기도와 명상의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넘어 완전에 도달하려고 분투했습니다. 베네딕트 같은 수도원은 수도원칙에 기도와 공부 외에 노동을 포함시켰습니다(Gustafson, 2016). 채소를 가꾸고 책을 만들고 다른 생산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기도 하고, 물건을 파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중세교회에 대해 반기를 들고 쇄신을 요구하며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성스러운 일과 속세의 일로 이분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소명 혹은 직업에 대한 교리를 부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 세상의 일상의 보통 일로 부르셨다고 주장했습니다(Ryken, 1995, p. 76).

 

루터는 일상의 일을 포함한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소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일상의 일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소명에 응답합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교회의 제단과 찬양, 성경 읽기, 제사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은 마귀가 꾸미는 술수이며, 온 세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 부엌에서, 작업장에서, 들판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Stevens, 1999/2001, p. 96에서 재인용).

 

루터와 칼빈은 서로 조금 다르지만 두 사람 다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모든 믿는자가 인간 중재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믿는 자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목사직을 받은 사람이 말씀을 강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교인은 모두가 제사장이지만 모든 제사장이 다 목사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김한옥, 2017).

 

칼빈도 역시 만인제사장론을 주장했지만 루터보다 목회직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상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목회적 직분이 더 필요한데, 목회자는 말씀을 강론하고 교회를 치리 권징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권위가 부여되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와 칼빈이 만인제사장론을 말하면서도 목회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만인제사장론이 목회직의 중요성을 훼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만인제사장론이 목회자가 목회직을 유지하면서 세속직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함의를 끌어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김승호, 2015).

 

개신교 종교개혁은 모든 성도의 사역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여러 교파를 낳았습니다. 성직자가 없는 퀘이커교도, 평신도 선교사를 파송한 모라비안교회, 대개 설교자가 평신도였던 침례교 등입니다(Stevenson, 1999/2001, p. 55).

 

영국의 경우 식민지 개척지에서는 목회자들에게 땅이 배분되었고 목회자는 주어진 땅을 경작하면서 목회를 하였습니다(Dorr, 1988, p. 24). 미국이 확장되는 시기에는 재정이 빈약했기 때문에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가 극소수였고 침례교 같은 교단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사업을 하여 돈을 벌면서 평신도로 혹은 이중직 목회자로 복음을 서부에 전파했습니다(Nerger, 2008, p. 18; Samushonga, 2019).

 

미국의 서부 개척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가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 시기는 이중직 목회의 전성기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Dorr, 1988, p. 25). 미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많은 교단들이 전문적인 사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교육이 보다 더 중요해지고 어떤 교단에서는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M. Div. 를 필수로 이수하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중직 목회자들의 수가 감소하였습니다. 교육과 안수가 전임 목회자와 이중직 목회자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많은 전임 목회자들과 교파의 리더들은 이중직 목회자들을 경멸하고 전임 목회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Bickers, 2013, p. 19).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이중직 목회는 새로운 현상이나 새로운 개념이 아니고 초대교회부터 있어 왔습니다. 재정적으로 완전히 지원을 받는 목회자는 예외이고 이중직 목회자가 오히려 일반적이었습니다. 특별히 복음이 처음 전파되는 지역에서는 이중직을 통해 선교를 감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교세가 확장되고 교회가 재정적으로 여력이 있을 때 전담 목회자가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